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미국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규모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본선에 나갈 자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명합니다. 이런 전당대회를 계기로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미국 대선 ABC’, 오늘은 ‘주요 정당 전당대회’ 네 번째 시간으로 ‘현대 기술과 전당대회’에 관해 보내드립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912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전당대회에서 치열한 경합을 통해 자당 대선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녹취: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육성)
특히 이해 전당대회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진영이 처음으로 전화를 이용했습니다. 이 전당대회에서 각 후보 진영은 전화를
이용해 19세기에 썼던 전신보다 더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술로는 지금처럼 전당대회를 전국에 생중계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우드로 윌슨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는 모습은 영화 필름과 레코드에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24년 대선에서는 미국 전당대회 역사상 큰 혁신이 이뤄졌습니다. 바로 라디오로 전당대회를 중계하게 된 것입니다.
(녹취: 1924년 전당대회 관련 음향)
당시 약 20개 라디오 방송국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를 중계했습니다. 라디오 도입은 전당대회 성격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전 전당대회는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뽑는 내부 행사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로 전당대회를 바로 중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전당대회가 정당과 자당 대선 후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특히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회복시키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 라디오를 적절하게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1940년에 들어 전당대회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기술이 또 등장했습니다. 바로 텔레비전입니다.
(녹취: 1940년 공화당 전당대회 TV 중계)
이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현장이 사상 처음으로 TV 전파를 탔습니다.
1952년에는 미국 내 68개 도시에 있는 104개 TV 방송국이 공화당 전당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했습니다. 이해 전당대회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공화당 후보 진영은 TV를 효율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이후 TV가 대량으로 보급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TV를 통해 전당대회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네. 2020 미국 대선 특집, ‘미국 대선 ABC’, 오늘은 ‘미국 주요 정당 전당대회’ 네 번째 시간으로 ‘현대 기술과 전당대회’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