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을 논의한 미국과 탈레반이 원칙적으로 합의했습니다. 합의안은 최종안이 나오면 135일 안에 아프가니스탄 안에 있는 5개 미군 기지에서 약 5천 명을 철수하고 기지를 폐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이제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와 협상을 벌일 예정인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탈레반’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탈레반의 연원”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막 집권한 하피줄라 아민 정권 대신 친 소련 정부를 세우려고 군대를 보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이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소련에 맞서 싸울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청년들이어서 아프간 남부와 파키스탄 북부에 주로 사는 파슈툰족 말인 ‘탈레반’으로 불렸습니다.
탈레반은 원래 학생 조직 정도 뜻으로 ‘이슬람 종교와 법을 갈고 닦은 지도자이자 스승’인 물라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학생 조직 탈레반의 변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러진 대소련 전쟁을 통해 강력한 반군 조직이 됐습니다.
탈레반은 전쟁 기간 미국의 막대한 지원과 파키스탄의 비호 아래 강력한 군사, 정치 조직으로 변신합니다. 탈레반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고, 결국 다른 반군 세력과의 내전을 거쳐 지난 1996년 아프가니스탄을 대부분 장악했습니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탈레반은 이 기간 심각한 위법행위나 인권침해를 자행했습니다.
탈레반은 여성 교육과 외출을 전면 금지하고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 제도를 시행하는가 하면 역사 유적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짧은 집권 기간 비타협적이고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슬람 나라인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UAE)는 이 기간 탈레반 정권을 인정했습니다.
“9.11 테러와 탈레반 축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약 3천 명이 목숨을 잃은 9.11 테러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배후였습니다.
당시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빈 라덴을 비호하고 미국에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탈레반은 한 달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축출됐습니다.
“장기화하는 아프간 전쟁과 탈레반의 부활”
미군이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은 2001년 탈레반을 축출했지만, 탈레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파키스탄 북부에서 세력을 유지한 채 산발적인 테러와 군사 공격을 통해 아프간 정부와 연합군을 괴롭혔습니다.
탈레반은 그러면서 2006년부터 다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 미군을 제외한 국제연합군이 철군하자 세력 범위를 더욱 넓혔습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영토 가운데 70% 정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하게 철수하지 못했고, 결국 아프간 전쟁은 미군이 가장 오래 개입한 전쟁이 됐습니다.
탈레반의 현재 지도자는 히바툴라 아쿤자다로, 그는 탈레반의 세 번째 지도자입니다. 물라로 불리는 아쿤자다는 18명 이상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위원회 보좌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과 탈레반의 아프간 평화협상”
전쟁이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피해가 커지자 지난 2017년에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결국 2018년에 탈레반과 직접 협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따라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9차례 협상을 벌였고, 결국 평화협정 초안에 최근 합의했습니다.
“아프간 평화협정의 운명”
이번 합의에서 미국과 탈레반은 단계적으로 미군을 철수하고 탈레반은 아프간을 테러 기지로 사용하는 외부 세력들을 허용하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향후 정부 구성과 휴전 문제를 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협상에는 난항이 예상됩니다. 탈레반이 현 아프간 정부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레반 측은 미국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아프간 정부를 배제했습니다. 탈레반은 향후 협상에서도 아프간 정부 대표를 개인 자격으로 취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정부와 미군을 겨냥한 탈레반의 테러와 공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탈레반이 어렵사리 합의에 이른 아프간 평화협정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주목됩니다.
뉴스 속 인물: 조슈아 웡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입니다.
송환법 개정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가 홍콩에서 장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이 다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최근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되기도 했던 웡은 홍콩이 중국 공산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조슈아 웡은 올해 23세로 홍콩개방대학에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겨우 14세 때였던 지난 2010년 본토와 홍콩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사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웡은 중산층 가정에서 났고 부모는 웡에게 사회 부조리에 관해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회운동가 웡은 2012년 중국 정부가 학교에 애국주의 교육을 의무화한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었습니다.
웡은 이어 2014년 홍콩에서 진행된 이른바 ‘우산혁명’을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습니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던 우산혁명 당시 웡은 학생 주도 조직인 ‘학민사조’를 이끌면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결국 우산혁명 당시 행적 탓에 교도소에 갔고, 짧게 복역한 뒤 올해 6월에 석방됐습니다. 웡은 이를 계기로 홍콩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 가운데 1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웡은 송환법 개정 반대로 시작된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시위대에게 송환법 반대 싸움에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웡은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신문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홍콩의 대규모 저항 운동은 중국 정부 적법성의 커다란 위기"라며 "이번 봉기는 나머지 세계를 향해 인간 존엄성과 평등, 자유를 위한 우리의 싸움을 지지해달라는 호소이기도 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그는 중국 공산당이 오는 10월 1일 건국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아무런 싸움 없이 그날을 기념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탈레반’, 그리고 뉴스 속 인물로 최근 다시 눈길을 끌고 있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에 관해서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