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오리건주는 미국에서도 특히 자연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풍요로운 숲과 웅장한 산맥, 강과 바다... 특히 이런 자연환경을 벗 삼아 삶의 여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알려졌는데요. 미국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풍물, 이야깃거리 찾아가는 타박타박 미국 여행, 오늘은 서부 오리건주 사람들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흔히 현대인의 삶을 말할 때 바쁘다, 삭막하다, 여유가 없다, 가족 챙길 시간도 없다...종종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그런데요.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도시 포틀랜드에 가면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런 사람들을 '킨포크(kinfolk)족', '킨포크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킨포크라는 말은 원래는 친척, 친족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느리고 여유 있는 삶, 간소하고 단순한 삶의 형태를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이런 형태의 삶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조용히 확산하고 있는데요. 그 배경에는 바로 포틀랜드에서 발행되는 잡지의 영향이 크다고 하네요. 오리건 주민 호소훈 씨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요?
[녹취: 호소훈 씨] "오리건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는 약간 느슨한 삶, 느린 삶이 문화 키워드입니다. 요새 오리건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킨포크(Kinfolk)'인데요. 오리건에서 발행된 잡지입니다. 오리건의 독특한 문화를 담아내려고 한 잡지인데요. 미국을 상징하는 코카콜라처럼 포틀랜드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2011년 포틀랜드에 사는 부부를 중심으로 약 40명의 주민이 뜻을 모아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한 잡지를 만들었는데, 그 잡지의 이름이 바로 킨포크였습니다. 한국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킨포크, 친척같이 생각돼서 이런 이름을 정했던 걸까요? 이 킨포크에는 포틀랜드 주민들이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나눠 먹고, 함께 낚시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자연과 교감하며 소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담겼는데요. 분주한 일상에서 이렇게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 시작한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킨포크 스타일이 1960년대 유행했던 히피 문화의 변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조금은 다르다고 호소훈 씨는 설명하네요.
[녹취: 호소훈 씨] "과거 60년대 히피가 사회를 떠나 등지고 별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면 킨포크는 도심형 히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리건 킨포크는 도시 안에 들어와 자연 친화적, 공동체 지향적인 그런 문화입니다. 그게 가장 독특한 점, 포틀랜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들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 타는 것을 더 즐기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숲속 오두막으로 떠나거나, 등산, 낚시를 즐기고, 텃밭을 가꾸고, 종이 냅킨 대신 천으로 만들어 쓰는...이런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요. 사실 이런 삶은 이미 포틀랜드 주민들의 일상 모습이기 때문에 정작 포틀랜드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못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녹취: 호소훈 씨] "그런데 막상 오리건 사람들은 잘 몰라요.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돼 다른 거라고 못 느끼는데, 한국 등 외부 세계에 민감한 나라에서는 어느새 중요한 문화 트렌드로 받아들이나 보더라고요"
포틀랜드 주민들이 이런 킨포크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건 포틀랜드라는 도시의 특성도 한몫을 하는데요. 포틀랜드는 자전거 길이 아주 잘 되어 있어 자전거 타기 좋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의 하나로도 늘 선정되는 곳이죠.
[녹취: 포틀랜드 주민]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전거 타는 걸 생각한다는 이 여성, 가능한 한 자전거를 많이 타려고 한다고 말하는데요.
[녹취: 포틀랜드 주민]
그런가 하면 자전거 타는 게 정말 즐겁고 재밌어서 매일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여성도 있습니다.
어느 조사 결과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포틀랜드 주민은 6% 정도 되는데요. 자동차가 발인 미국에서 이 수치는 전국 평균을 웃도는 겁니다. 포틀랜드 주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기까지는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로 상황을 만든 시 정부의 노력도 물론 있었고요. 자전거 타기 운동을 펼치는 민간단체들의 노력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타박타박 미국 여행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리건주가 캐스케이드 산맥을 중심으로 동서의 환경이 완전 다른 것처럼 포틀랜드도 시내 중심을 흐르는 윌래밋 강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이 또 확연한 구분이 된다고 합니다.
[녹취: 호소훈 씨] "강 동쪽은 원래 포틀랜드고요. 요새 말하는 킨포크 스타일, 자연주의적이고 간소한 삶(미니멀 라이프)을 추구하는 건 동쪽입니다. 서쪽은 80년대 이후, 첨단 산업을 많이 유치하면서 늦게 개발된 타운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깨끗하고 도시 인프라가 잘 된 느낌이고요. 서쪽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오리건이 지난 몇십 년 동안 굉장히 많이 바뀐 곳의 하나죠. 30년 전에는 개발이 덜 되어서 보다 자연 친화적이었다면 지금은 자연의 풍부함은 덜해지고, 그 대신 여러 가지 편리한 산업들, 편리한 가게들이 많아져서 편리한 쪽에는 더 나아진 것 같습니다. "
오리건주의 주 산업은 뭘까요? 오리건주 관광청 홍보관 그렉 에크하트 씨 도움말입니다.
[녹취: 그렉 에크하트 씨] "오리건주는 농업부터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 회사인 인텔(Intel) 공장도 들어와 있고요. 세계적인 스포츠 기업인 나이키(Nike)의 본사도 오리건에 있습니다. 스포츠 회사인 아디다스(Adidas) 미국 본사, 야외 스포츠용품 회사인 컬럼비아(Columbia Sportswear) 본사도 저희 주에 있죠. 이들 회사가 저희 주의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제가 종사하고 있는 관광업도 100억 달러 규모로, 저희 주의 매우 중요한 산업 중 하나입니다."
또 오리건주는 판매세를 받지 않는 몇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인데요. 오리건주 관광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녹취: 그렉 에크하트 씨] "오리건은 판매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워싱턴 시애틀, 캘리포니아 같은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왔다가 물건을 많이 사가는 편입니다. 주 정부가 예산을 늘리기 위해 판매세를 도입하려고 몇 번 시도 했는데요. 반대 여론이 많아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오리건은 판매세가 없는 것으로도 알려져 왔고, 주민들이 내세우는 점 중의 하나거든요."
포틀랜드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서점, 책방입니다. 파웰서점(Powell Bookstore)이라고 미국에서 독립 서점으로는 가장 큰 서점이 포틀랜드에 있습니다. 서점 매장 규모만 1.6에이커(acre)가 넘는다는데, 1에이커가 보통 축구장 절반만 하다고 하니까 서점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 짐작하시겠죠? 이 서점에는 새 책뿐만 아니라 헌 책까지 4만 권이 넘는 책을 판다고 하는데요. 요즘은 워낙 인터넷 서점들이 대세다 보니까 직접 서점에 가서 책들을 훑어보고, 책을 고르는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요. 포틀랜드 사람들이 킨포크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조용한 힘은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풍물, 이야깃거리 찾아가는 타박타박 미국여행, 시간이 다 됐는데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영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