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1월 22일은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44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에서는 낙태를 둘러싸고 여전히 찬반 논쟁이 뜨거운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현숙 기자입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뭔가요?”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을 사생활에 대한 기본권의 일종으로 인정하면서 낙태를 최초로 합법화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9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거부당했죠. 그러자 매코비는 1970년 새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찾아 텍사스 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원고는 맥코비였지만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인 제인 로(Jane Roe)를 사용했고 소송의 피고인은 댈러스카운티 지방 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였는데요. 그래서 소송의 명칭이 ‘로 대 웨이드(Roe vs. Wade)’가 된 겁니다.
이 소송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고 1973년 1월 22일 대법원은 7대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그러니까 임신 6개월 이상 된 시점이 되기 전까지는 임신한 여성이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는데요.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출산 직전 3개월간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을 인정해 생명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니까 사실상 임신 6개월까지는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낙태를 할 수 없게 한 겁니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습니다.
“미국에서 왜 낙태가 논란이 되는 건가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낙태 문제는 미국 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공화당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단체들은 낙태 반대를 주장하고 있고, 이에 비해 좀 더 진보적인 성향의 민주당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성 단체들은 낙태 권리를 옹호하고 있는데요.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라는 주장과 낙태는 법이 결정할 수 없는 여성의 선택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겁니다.
낙태 반대 진영은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항의 시위나 의회 로비, 소송 같은 방법을 통해 낙태를 막거나 제한하려고 노력해 왔는데요. 특히 낙태 문제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면 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낙태와 관련해 미국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요?”
지난 90년대 초에 펜실베이니아 주 가족계획협회는 주지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게 됩니다. 가족계획협회는 낙태를 옹호하는 단체인데요.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낙태를 제한하는 다양한 규정을 만들자 이에 항의에 소송을 제기했죠. 당시 연방대법원은 주 정부 손을 들어주면서 여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각 주 정부가 낙태 규제 조항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니까 낙태 반대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반면에 작년 6월엔 연방대법원이 낙태 옹호 진영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낙태 시설을 엄격히 규제하는 텍사스 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대법관 5 대 3의 결정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겁니다.
각 주별로 살펴보면 어떨까요? 센추리 파운데이션이라는 연구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현재 낙태를 금지하는 정책들이 증가하고 있는데요. 지난 한 해에만 미국 50개 주 가운데 18개 주에서 낙태를 제한하는 법이 50건 통과됐습니다. 낙태 반대 단체들이 연방 차원의 변화 보다는 주 차원에서 낙태 금지 정책을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센추리 파운데이션 측은 분석했습니다.
주 정부에서 통과된 낙태 관련 법안들을 보면, 먼저 낙태 시술을 받는 데 필요한 과정을 최대한 복잡하고 어렵게 하거나 낙태 시술을 제공하는 병원에서 유지해야 할 시설이나 위생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낙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이 여전히 나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분의 2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완전히 뒤집혀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는 확연히 다른 생각을 보였는데요. 민주당 성향의 응답자 중 79%가 낙태가 대부분 주에서 합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공화당원은 34%만이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최근 거트메이처 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낙태하는 여성의 비율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낙태 건수가 약 92만6천 건으로 집계됐는데요. 이는 지난 1974년 이래 최저 수준입니다. 앞서 시행된 2011년 조사 때의 106만 명에 비해 14% 줄어든 건데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미국에서 낙태는 꾸준히 늘다가, 1990년에 16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미국에서 낙태가 줄어드는 이유로 피임 기술이 향상된 점을 꼽았습니다. 피임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낙태율도 떨어졌다는 거죠. 또 한가지 이유는 낙태에 대한 주 정부의 규제가 강화된 것을 꼽고 있는데요. 미 전역에서 낙태 병원이 많이 줄었고 또 낙태하기 위해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찾아야 하는 불편함으로 인해 여성들이 낙태를 포기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낙태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낙태를 반대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작년 3월 주민초청 토론회에서는 불법 낙태를 한 여성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낙태 처벌 발언]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한 뒤, 여태 공석인 연방대법관 자리에 스캘리아 대법관과 비슷한 보수적 성향의 판사를 지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는데요.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연방 상, 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 역시 작년 선거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요.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낙태 문제가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매년 ‘로 대 웨이드’ 판결 기념일을 전후해 ‘March for Life’, ‘생명을 위한 행진’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시위를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요. 올해는 27일에 시위를 벌일 예정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현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