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터키와 러시아 두 나라가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주 러시아를 전격 방문하면서 이뤄진 건데요. 하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와 맞물리면서 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시선도 많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입니다.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
터키와 러시아는 흑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나라입니다. 터키와 러시아의 사이가 안 좋은 게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터키와 러시아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무대로 더 많은 영토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충돌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터키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러시아는 동맹군의 일원으로 서로 총을 겨눴습니다.
하지만 1차 대전의 와중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제국은 무너졌고요. 전쟁이 끝난 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도 역시 혁명으로 무너졌는데요. 이후 탄생한 '소련'과 '터키 공화국'은 그냥 뜨뜻미지근한 관계였습니다.
두 나라가 다시 적대적인 관계가 된 것은 1950년대 냉전 시대 때인데요. 2차 대전이 끝나고 서방 연합군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군사 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 터키가 가입한 겁니다. 이후 터키는 친서방 노선을 걸으면서 소련과는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터키는 특히 지리적으로 나토 방어의 최전선이기 때문에 중요한 안보 협력국으로 인정받았는데요. 반면 소련은 철의 장막에 갇혀 철저히 고립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략적 동맹 관계”
두 나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건 소련이 해체된 후부터입니다. 터키는 에너지 수요의 7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해 충당하고, 터키 건설 업체가 러시아에 진출하는 등 특히 양국의 경제 협력이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급기야 2004년 말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터키를 공식 방문하고, 2009년에는 에드로안 당시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이후에도 빈번한 상호방문을 통해 양국은 에너지 분야 협력, 비자 면제 협정 등을 체결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엇갈리는 시각”
2011년 시리아에서 발발한 내전은 다시 두 나라를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인데요.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터키는 시아파 세력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터키에 우호적인 반군 세력이 집권하면 더 좋은 기반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시리아 반군 세력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IL)이 스며들면서 상황은 아주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ISIL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고, 시리아 내전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결국 국제사회는 ISIL 격퇴작전에 나섰는데요. 여기에 러시아도 ISIL 등 테러 조직을 격퇴하겠다며 나선 겁니다.
터키를 비롯한 많은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는데요. 러시아는 원래부터 '알 아사드' 정권과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가 ISIL을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정부를 측면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죠.
러시아는 또 시리아에 해군기지가 있는데요. 러시아의 유일한 해외 기지기도 합니다. 현재 러시아 공군은 시리아 내전에서 주도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용기 격추사건”
2015년 11월,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24기가 터키와의 국경 근처, 시리아 상공에서 격추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녹취: VOA 러시아 전투기 격추 보도]
터키 정부는 여러 차례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침범해 러시아 측에 항의했지만 러시아가 응하지 않아 결국 격추했다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러시아는 격추된 공군기가 피격 당시 터키 상공이 아니라 시리아 영내에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항의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가 테러와 싸우는 동안, 테러 공범자가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터키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 무렵 터키가 ISIL로부터 싼값에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터키가 테러 공범자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터키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양국 간의 골은 더 깊어졌습니다.
[녹취:VOA 뉴스 격추 사건 후 중동 지역 긴장 고조 ]
이후 러시아는 터키와의 모든 경제협력 사업을 전격 보류하고요. 터키산 식품 수입 거부는 물론, 러시아 국민들의 터키 단체관광 일정도 모두 중지시키는 등 양국간 교역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경제 압박에 무릎꿇은 터키의 화해”
지난 6월 말 에르도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격추 사건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터키가 경제적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터키 관광수입의 상당수는 러시아 관광객들에 의존하는데요. 지난 9개월간 관광이 전면 금지되면서 터키의 관광산업이 휘청거렸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터키에 사과뿐만 아니라, 피해에 대한 배상도 요구했고 터키가 배상을 약속하면서 양국 간에는 관계 정상화로 가는 물꼬가 터졌습니다.
“양국의 신밀월 관계 ”
[녹취: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 러시아 방문 보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러시아를 전격 방문했습니다. 터키에서 7월 중순 발생한 쿠데타 진압 후 첫 외국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택한 겁니다.
[녹취: VOA 터키-러시아 정상회담 관련 보도]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데요. 두 정상은 앞으로 경제 협력을 비롯해 전면적인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사반란 후속 조치로 서방 사회의 비난이 이어지자, 러시아에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러시아로서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우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인데요. 이른바 ‘두 고립된 나라’의 급속한 신밀월관계를 국제사회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뉴스따라잡기 오늘은 터키와 러시아 관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