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Stand Your Ground Law’, 정당방위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부지영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Stand Your Ground Law’, 한국에서는 보통 정당방위법이라고 번역합니다만, 단순히 정당방위법이라고 하기엔 의미가 좀 복잡하다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Stand Your Ground’, ‘자기 위치를 지켜라’,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물러날 필요 없다’, 대충 이런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 법을 이해하려면 여러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죠. 집에 들어온 도둑을 때려서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집 주인이 징역형을 받은 건데요. 집에 침입한 도둑이지만 저항하지 않고 도망가려고 한 사람을 식물인간이 될 정도로 때린 건 지나치다는 거였습니다.
진행자) 네, 당시 한국에서 정당방위냐 아니냐, 큰 논란이 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자) 맞습니다. 한국 법원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과잉방위였다고 판단해서 실형을 내렸는데요. 그런데 이 사건이 만약 미국에서 일어났더라면, 기소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내 많은 주에서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캐슬 독트린’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성의 원칙’, ‘성 보호주의’ 정도가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성, 자신만의 보호구역을 갖는다는 뜻이죠. 자신의 보호구역에 침입해서 위협을 가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력을 사용해서 상대를 숨지게 하더라도 기소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진행자) 자신만의 성, 보호구역이라면 보통 집을 얘기하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집뿐만이 아니고요. 상점이나 회사 같은 사업체를 포함시키는 주도 있습니다. 미국 집들은 대부분 담이 없고, 울타리가 있다고 해도 아주 낮은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도 ‘캐슬 독트린’ 때문인지, 미국 사람들은 다른 집 마당에 절대 함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진행자) 네, 미국은 총기소지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만큼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갔다간 총 맞는다, 뭐 이렇게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집이 아닐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약 집밖에서 나를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행자) 나의 성, 내 보호구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면 ‘캐슬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겠죠?
기자) 맞습니다. 집이 아닌 장소에서는 보통 ‘Duty to Retreat’이란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Duty to Retreat’은 ‘후퇴해야 할 의무’란 뜻인데요.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후퇴의무법’ 정도가 되겠네요. 생명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위협을 피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 또는 이를 피했다가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를 제외하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금하는 법입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앞에서 위협하는 사람이 있어도 피할 방법이 있으면, 공격하지 말고 물러나란 얘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앞에서 총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해당되지 않겠죠.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총알을 피할 수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캐슬 독트린’도 ‘후퇴의무법’의 예외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집에 누가 침입해서 위협하면, 달아나지 않고 맞서도 된다는 겁니다. 또 ‘후퇴의무법’은 임무중인 경찰에게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 내 일부 주들은 집이 아니어도, 경찰이 아니어도 굳이 물러날 의무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소를 막론하고 즉각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고, 모든 무력을 사용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법적 권리가 있다는 건데요. 그 과정에서 상대를 살해한다고 해도 정당방위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위치를 지켜라’, ‘Stand Your Ground’법입니다.
진행자) 그럼, 얼마나 많은 주에서 이 법을 채택하고 있나요?
기자) 조금씩 내용에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매사추세츠를 포함해서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런 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경우’란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냥 길을 가로막고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총으로 쏜다면, 그건 미국 내 어느 주에서든지 범죄입니다. 살해나 심각한 부상, 강간, 납치 등을 당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고 느꼈을 때만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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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미국 뉴스 따라잡기 듣고 계십니다. 정당방위법의 일종인 ‘Stand Your Ground’ 법을 알아보고 있는데요. 얘기를 듣고 보니까, 이 법이 좀 애매하기도 하고, 악용될 소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3년 전에 일어난 조지 짐머만 사건 기억하시죠?
진행자) 네, 플로리다 주에서 10대 흑인 소년이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이죠.
기자) 맞습니다. 2012년 2월, 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에서 동네 순찰을 돌던 자경방범대장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이 17살난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Trayvon Martin)을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한 사건인데요. 사실 당시 짐머만과 마틴 사이에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짐머만은 마틴을 수상한 인물로 여겨서 쫓아갔고, 마틴은 오히려 짐머만을 수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된 상황에서 짐머만이 총을 쐈고, 마틴이 그 총에 맞아 숨진 겁니다. 짐머만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정당방위로 총을 쐈다고 주장했고요. 결국 다음해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진행자) 이 사건이 인종갈등으로 번지면서,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짐머만은 사실 히스패닉계, 중남미계 미국인이지만, 백인으로 묘사되면서 흑백 인종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마틴이 옷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차림의 흑인은 범죄자란 편견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흑인 사회가 분노한 겁니다. 또 짐머만은 체격이 상당히 큰 편인데 비해서, 마틴은 그렇게 몸집이 크지 않았고요.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년을 상대로 총을 쏜 걸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느냐, 과잉방위가 아니냐, 이러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진행자) 당시 짐머만이 얼굴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하긴 하죠. 어쨌든 짐머만이 무죄 평결을 받았는데요. 미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죠.
기자) 네, 당시 배심원이 무죄 평결을 내린 근거 가운데 하나가 오늘 설명해드린 ‘Stand Your Ground’ 법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주에서 이 법은 2005년에 채택됐는데요. 짐머만 사건 이후,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런 법 때문에 과잉방위로 이어져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진행자)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도 이 법과 관련해서 한 마디 했죠?
기자) 네, 오바마 대통령은 짐머만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 주 법과 지방자치단체 법을 검토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요. 에릭 홀더 법무장관도 이 법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진행자) 짐머만 사건이 일어난 지 지난 달로 3년이 됐는데, 최근 사건의 주인공 짐머만이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고요?
기자) 네, 짐머만은 23일, 자신의 변호사 웹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에서, 사건 직후 오바마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마틴 가족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말하는 등 무책임하게 행동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면 마틴처럼 생겼을 거라고 말했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발언 때문에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겁니다. 짐머만은 당시 사건에 대해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Stand Your Ground’법, 참 논란 많은 법인데, 짐머만 사건이 일어난 뒤 좀 달라진 게 있나요?
기자) 별로 없습니다. 여전히 미국 내 22개 주에서 합법인데요. 짐머만 사건이 일어난 뒤 10여 개 주에서 이 법을 없애거나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루이지애나 주에서만 성공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정당방위법 알아봤습니다. 부지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