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두 달 만인 1953년9월, 북한 공군 조종사가 소련제 신형 미그-15 제트기를 몰고 한국으로 망명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인공은 당시 21살의 인민군 대위 노금석 씨. 노금석 씨는 한국 망명 직후 미국으로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올해로 80살이 된 노 씨는 59년 전 공산주의 치하에서 사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며,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을 탈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창립 70주년을 맞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노금석 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세 차례의 특집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노금석의 자유를 향한 비행’. 유미정 기자가 그 세 번째, 마지막 편을 전해 드립니다.
기자) 노금석 선생님, 선생님께서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북한을 탈출해 자유세상으로 귀순한 지 올해로 59년이 지났습니다. 감회가 어떠십니까?
노금석) 미국에 너무 오래 사니까 미국 사람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옛날 생각이 자주 납니다. 59년 전에 제가 이북에서 도망나올 때 그 때 내 생각에는 갈까 안갈까, 가다가 만약에 죽으면 어떻게 되나…그래 마지막에 제가 딱 결정하기로, 죽어도 가야되겠다, 그리고 도망갔어요. 20퍼센트 정도 성공할 줄 알고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미국 공군 기지에서 레이더를 꺼놓았기 때문에 제가 오는 것을 미국 공군이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이 착륙했습니다. 그 후에 미국에 와서 제가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일하다 나니까 벌써 59년이 지나갔습니다. (웃음)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요. 그렇지만 만약 시간이 있으면 한국 방문할 생각이 납니다. 지금 한국에 가면 그 때하고 아주 바뀌었을 겁니다.
기자) 일제 식민통치가 끝나고 북한에 소련이 앞세운 김일성 공산 정권이 들어섰는데요, 김일성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습니까?
노금석) 옛날에 한국에 애국자가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근데 김일성이 쓱 나오니까 이거 아주 젊은 사람이거든. 33살이었거든요, 1945년에. 그 때 벌써 한국 사람들이 가짜 김일성인 거 알았거든요. 진짜 김일성이 아니고 가짜였거든요. 아마 진짜 이름은 김성주인가 돼요. (진짜 김일성은) 나이 아주 많거든요. 이승만이나 김구 그런 수준이 되는데 이 사람은 1945년에 나이 33살이거든요 아주 젊은 놈이 나왔거든요. 그러니 진짜 김일성이 아니지요. 근데 세월이 지나갈수록 전부 김일성 장군하니까 위신이 올라갔지요.
기자) 북한 주민들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김일성을 믿고 따랐습니까?
노금석) 세월이 지나가고 그리고 살아야 하니까 그거 믿었지요. 그거 거짓말 자꾸하면 진짜 같거든요. 그 때부터 김일성이라 하구 있었지요.
기자) 59년 전 한국전쟁 정전협정 직후 북한을 탈출하셨는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반도가 분단이 돼 있을 것으로 상상하셨습니까?
노금석) 그렇게 상상 못했습니다. 한국이 통일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될 줄 몰랐지요. 구라파에서 독일이 통일되고 다른 데 공산주의 없앴는데 한국엔 어떻게 됐는지 안되거든요. 내 어려서부터 이북의 공산당이 제일 악질인 것 알았거든요. 공산주의 중에도.. 중국 가서 중국 공산주의 보니까 자유가 더 있었는데, 이북은 아무것도 없구요, 자꾸 자유사회에 대해서 못 되게 하구요, 그리고 사람들 못살게 하구요. 그것은 이북이 아주 제일 나쁜 나라인 것 같아요.
기자) 북한에 계실 때 탈출 계획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으셨나요?
노금석) 한 사람 있었어요. 해군 군관학교 다닐 때 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 사람 일본 시대에 일본 수산학교를 졸업했거든요. 그 사람은 저하고 비밀이 없어요. 그 사람도 빨갱이 싫어하고 나도 빨갱이 싫어했어요. 그래 그 사람한테 나 도망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 마지막에 나보고 가지 말라고 나 가면 난 어떻게 되나 하고, 그래 나도 그 말을 안 할 거 하다가 그 사람 보고 우리 함께 도망갈까 했죠. 그 사람 날보고 함께 도망가자 근데 함께 도망이 안 되거든요. 그 후에 도망가자는 말 안했어요. 그래 나 나온 후에 그 사람 총살 당했어요. 다섯 명이 총살 당했어요.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다 아는 거구요. 4명은 나에 대해 모르거든요. 4명은 높은 사람 밑에 사람 진짜 빨갱이 들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도망가는 거 왜 몰랐는가 하구요, 그래 총살 당했지요. 17년 후에 (그 얘기를 ) 들었어요.
기자)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그리고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금석) 이북이 공산주의가 아니고 무슨 주의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벌써 중국에 가니까요, 중국에서 비행훈련 받을 때 보니까 중국 사람들이 아주 민주주의 근성이 많았거든요, 상점들이 있고 시장에 가면 물건들이 흔하고…이북에는 그런 게 그 때부터 없었거든요. 근데 보니까 이북 정부를 변경하기 전에는 이 놈들 계속하자 할 거거든요. 아마 세월이 지나가면 이북 정부를 바꿔야 되는데요, 그게 언제 될지 모르지요. 그거…
기자)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계속 갈 것으로 보십니까?
노금석) 영원히는 안 갈 거예요. 언제 끊어질지 그게 문제지요. 김정은이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구요, 젊은 아이이기 때문에.. 아마 누가 똘가 낼 수가 있지요. 어떻게 누가 서면… …저하고 비행기 같이 타던 사람 중에 오극렬이란 사람이 있었어요.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그 분이 아주 높은 지위에 있었거든요. 그 분은 저하고 비행기 함께 탔는데요. 지금 아마 김정은이 그 사람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뒤에서 일어나서 말이요 김정은을 똘가 내면 되는데요, 그렇게 될 지 모르지요.
기자) 오극렬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
노금석) 나보다 한 살 위거든요. 81살. 소련에서 공부 많이 했어요. 그 사람 아버지하고 김일성하고 함께 일본군하고 싸움했어요. 그러다 죽었지요. 그 거 때문에 그 사람은 빨리 올라갔거든요. 나하고 아주 친했어요. 이북 공군에 있을 때. 근데 그 사람 아버지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공중전에도 안나왔어요. 나와 죽으면 안되니까 말이죠….같이 자고 밥먹고, 동생이나 형이나 마찬가지지요. 한번은 이 사람이 신호총이라는 게 있어요. 권총. 이 사람이 자기 손을 한번 쐈거든요. 오발했거든요.그래서 내가 손 묶어서리 병원에 데려갔어요. 그 사람은 나한테 아주 감사하다구요. 빨리 데려가서 치료를 받았거든요. 만주에서요. 그 이후 부터는 아주 친하게 지냈지요. 근데 그 사람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 줄 몰랐거든요. 내가 도망간 후에 공군사령관이 되고 그 다음에 정부에서 높이 올라갔다구요. 한번 만났으면 좋겠는데… 아마 내가 도망한 후에 근심 많이 했을 거예요. 자기 친구가 도망갔다구요.
기자) 북한이 변화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노금석) 그 이북에 군인들은 늙은 장군들은 이제 죽고 젊은 군인들이 높아지면 아마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더 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한 10년 내에는 내 생각에 남북이 통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데…모르지요. 어떻게 될 지요.
기자) 미국의 소리 방송이 70주년을 맞는데요. 과거 선생님처럼 지금 저희 방송에 귀 기울이고 있을 청취자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노금석) 그 분들 도와줬으면 좋겠는데요…그 어디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 분들도 이남에 나오면 좋겠는데요, 근데 그 분들이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그 분들 도망나오면 가족들을 모두 죽이니까요, 그 아주 나오기 힘들지요. 그러니까 항상 통일이 되면 좋은데요. 가족을 죽이는 것은 1951년도에 법이 생겼어요. 법에 누가 이남에 도망가면 가족을 전부 사형시킨다, 그런 법이 생겼어요. 그래 저는 도망할 때 가족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근심이 없었지요.
기자)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노금석) 나는 자꾸 늙어가니까 말이요, (웃음) 통일 빨리 되면 한 번 (고향에) 가보고 싶은데…너무 늙으면 어떻게 되요? 내가 지금 여든 살인데 미국 나이로 아흔 살이 되면 힘들거든요…금강산은 내가 가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고향 가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거든요.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때 살던데 함흥, 흥남, 단천 평안북도의 수풍, 그 다음에 강계…그런데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만약에 통일이 되면…또 시간이 되면 만주에도 한 번 가보고 싶구요. 만주에 비행기 타던데요…연길이라던가 안동이라던가, 통화….
'미국의 소리’ 방송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보내 드린 특집방송, ‘노금석의 자유를 향한 비행.’ 오늘 순서로 모두 마칩니다. 인터뷰에 유미정 기자였습니다.
기자) 노금석 선생님, 선생님께서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북한을 탈출해 자유세상으로 귀순한 지 올해로 59년이 지났습니다. 감회가 어떠십니까?
노금석) 미국에 너무 오래 사니까 미국 사람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옛날 생각이 자주 납니다. 59년 전에 제가 이북에서 도망나올 때 그 때 내 생각에는 갈까 안갈까, 가다가 만약에 죽으면 어떻게 되나…그래 마지막에 제가 딱 결정하기로, 죽어도 가야되겠다, 그리고 도망갔어요. 20퍼센트 정도 성공할 줄 알고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미국 공군 기지에서 레이더를 꺼놓았기 때문에 제가 오는 것을 미국 공군이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이 착륙했습니다. 그 후에 미국에 와서 제가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일하다 나니까 벌써 59년이 지나갔습니다. (웃음)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요. 그렇지만 만약 시간이 있으면 한국 방문할 생각이 납니다. 지금 한국에 가면 그 때하고 아주 바뀌었을 겁니다.
기자) 일제 식민통치가 끝나고 북한에 소련이 앞세운 김일성 공산 정권이 들어섰는데요, 김일성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습니까?
노금석) 옛날에 한국에 애국자가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근데 김일성이 쓱 나오니까 이거 아주 젊은 사람이거든. 33살이었거든요, 1945년에. 그 때 벌써 한국 사람들이 가짜 김일성인 거 알았거든요. 진짜 김일성이 아니고 가짜였거든요. 아마 진짜 이름은 김성주인가 돼요. (진짜 김일성은) 나이 아주 많거든요. 이승만이나 김구 그런 수준이 되는데 이 사람은 1945년에 나이 33살이거든요 아주 젊은 놈이 나왔거든요. 그러니 진짜 김일성이 아니지요. 근데 세월이 지나갈수록 전부 김일성 장군하니까 위신이 올라갔지요.
기자) 북한 주민들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김일성을 믿고 따랐습니까?
노금석) 세월이 지나가고 그리고 살아야 하니까 그거 믿었지요. 그거 거짓말 자꾸하면 진짜 같거든요. 그 때부터 김일성이라 하구 있었지요.
기자) 59년 전 한국전쟁 정전협정 직후 북한을 탈출하셨는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반도가 분단이 돼 있을 것으로 상상하셨습니까?
노금석) 그렇게 상상 못했습니다. 한국이 통일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될 줄 몰랐지요. 구라파에서 독일이 통일되고 다른 데 공산주의 없앴는데 한국엔 어떻게 됐는지 안되거든요. 내 어려서부터 이북의 공산당이 제일 악질인 것 알았거든요. 공산주의 중에도.. 중국 가서 중국 공산주의 보니까 자유가 더 있었는데, 이북은 아무것도 없구요, 자꾸 자유사회에 대해서 못 되게 하구요, 그리고 사람들 못살게 하구요. 그것은 이북이 아주 제일 나쁜 나라인 것 같아요.
기자) 북한에 계실 때 탈출 계획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으셨나요?
노금석) 한 사람 있었어요. 해군 군관학교 다닐 때 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 사람 일본 시대에 일본 수산학교를 졸업했거든요. 그 사람은 저하고 비밀이 없어요. 그 사람도 빨갱이 싫어하고 나도 빨갱이 싫어했어요. 그래 그 사람한테 나 도망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 마지막에 나보고 가지 말라고 나 가면 난 어떻게 되나 하고, 그래 나도 그 말을 안 할 거 하다가 그 사람 보고 우리 함께 도망갈까 했죠. 그 사람 날보고 함께 도망가자 근데 함께 도망이 안 되거든요. 그 후에 도망가자는 말 안했어요. 그래 나 나온 후에 그 사람 총살 당했어요. 다섯 명이 총살 당했어요.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다 아는 거구요. 4명은 나에 대해 모르거든요. 4명은 높은 사람 밑에 사람 진짜 빨갱이 들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도망가는 거 왜 몰랐는가 하구요, 그래 총살 당했지요. 17년 후에 (그 얘기를 ) 들었어요.
기자)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그리고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금석) 이북이 공산주의가 아니고 무슨 주의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벌써 중국에 가니까요, 중국에서 비행훈련 받을 때 보니까 중국 사람들이 아주 민주주의 근성이 많았거든요, 상점들이 있고 시장에 가면 물건들이 흔하고…이북에는 그런 게 그 때부터 없었거든요. 근데 보니까 이북 정부를 변경하기 전에는 이 놈들 계속하자 할 거거든요. 아마 세월이 지나가면 이북 정부를 바꿔야 되는데요, 그게 언제 될지 모르지요. 그거…
기자)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계속 갈 것으로 보십니까?
노금석) 영원히는 안 갈 거예요. 언제 끊어질지 그게 문제지요. 김정은이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구요, 젊은 아이이기 때문에.. 아마 누가 똘가 낼 수가 있지요. 어떻게 누가 서면… …저하고 비행기 같이 타던 사람 중에 오극렬이란 사람이 있었어요.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그 분이 아주 높은 지위에 있었거든요. 그 분은 저하고 비행기 함께 탔는데요. 지금 아마 김정은이 그 사람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뒤에서 일어나서 말이요 김정은을 똘가 내면 되는데요, 그렇게 될 지 모르지요.
기자) 오극렬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
노금석) 나보다 한 살 위거든요. 81살. 소련에서 공부 많이 했어요. 그 사람 아버지하고 김일성하고 함께 일본군하고 싸움했어요. 그러다 죽었지요. 그 거 때문에 그 사람은 빨리 올라갔거든요. 나하고 아주 친했어요. 이북 공군에 있을 때. 근데 그 사람 아버지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공중전에도 안나왔어요. 나와 죽으면 안되니까 말이죠….같이 자고 밥먹고, 동생이나 형이나 마찬가지지요. 한번은 이 사람이 신호총이라는 게 있어요. 권총. 이 사람이 자기 손을 한번 쐈거든요. 오발했거든요.그래서 내가 손 묶어서리 병원에 데려갔어요. 그 사람은 나한테 아주 감사하다구요. 빨리 데려가서 치료를 받았거든요. 만주에서요. 그 이후 부터는 아주 친하게 지냈지요. 근데 그 사람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 줄 몰랐거든요. 내가 도망간 후에 공군사령관이 되고 그 다음에 정부에서 높이 올라갔다구요. 한번 만났으면 좋겠는데… 아마 내가 도망한 후에 근심 많이 했을 거예요. 자기 친구가 도망갔다구요.
기자) 북한이 변화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노금석) 그 이북에 군인들은 늙은 장군들은 이제 죽고 젊은 군인들이 높아지면 아마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더 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한 10년 내에는 내 생각에 남북이 통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데…모르지요. 어떻게 될 지요.
기자) 미국의 소리 방송이 70주년을 맞는데요. 과거 선생님처럼 지금 저희 방송에 귀 기울이고 있을 청취자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노금석) 그 분들 도와줬으면 좋겠는데요…그 어디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 분들도 이남에 나오면 좋겠는데요, 근데 그 분들이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그 분들 도망나오면 가족들을 모두 죽이니까요, 그 아주 나오기 힘들지요. 그러니까 항상 통일이 되면 좋은데요. 가족을 죽이는 것은 1951년도에 법이 생겼어요. 법에 누가 이남에 도망가면 가족을 전부 사형시킨다, 그런 법이 생겼어요. 그래 저는 도망할 때 가족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근심이 없었지요.
기자)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노금석) 나는 자꾸 늙어가니까 말이요, (웃음) 통일 빨리 되면 한 번 (고향에) 가보고 싶은데…너무 늙으면 어떻게 되요? 내가 지금 여든 살인데 미국 나이로 아흔 살이 되면 힘들거든요…금강산은 내가 가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고향 가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거든요.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때 살던데 함흥, 흥남, 단천 평안북도의 수풍, 그 다음에 강계…그런데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만약에 통일이 되면…또 시간이 되면 만주에도 한 번 가보고 싶구요. 만주에 비행기 타던데요…연길이라던가 안동이라던가, 통화….
'미국의 소리’ 방송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보내 드린 특집방송, ‘노금석의 자유를 향한 비행.’ 오늘 순서로 모두 마칩니다. 인터뷰에 유미정 기자였습니다.